‘평균 연봉 1억 원 이상.’ 대한민국 직장인 대다수, 그리고 대부분의 소상공인에게도 역시 꿈의 숫자다. 그 꿈의 숫자를 이룬, 적어도 가까운 금융 노조와 삼성전자 노조는 최근 잇따라 거리로 나가 투쟁을 외쳤다. 생존을 위해, 노동 가치의 보존과 고양을 위해 단체행동권을 사용하는 그들의 요구는 정당해 보인다.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을 사용하는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을 대하는 대중의 시선이 과거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시선에 비해 차가운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가 지역에 내려가는 것이 마치 대단한 희생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퍽 정당한 주장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물론 지지하는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과 금융 공공기관과 그 주변의 타 기관과 기업, 삼성전자와 일정하게 교류해야 하는 수많은 고객 및 관계자들은 그럴 수도 있다. 그들 역시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찬반의 입장이 있고, 충분히 생각해 보고 그들에게 동조할 수가 있다. 하지만, 조금 먼 곳에서 바라본 그들의 파업, 그들의 동여맨 머리띠는 뭔가 어색해 보인다.
우선, 그들은 힘이 약해서 뭉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일, 그러니까 임금 투쟁은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의 권리임이 분명하다.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 투쟁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투쟁처럼 가능하고 바람직하다. 지금의 저임금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과거에는 고임금이었다. 경제 성장에 함께 동참하고 노동 운동까지 해 온 선배들의 노고도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투쟁은 단지 기득권 수호만을 위한 것으로 보여 아쉽다.
몇 가지 대안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하려면, 비교해 보아야 한다.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나머지 가운데 극히 일부는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줄타기를 하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처우와 연봉이 만족스러웠다면, 향후 경영진 아니면 정부가 중요하고 심각한 결정을 할 때 남을지 떠날지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남아 있되 입지를 줄이지 않으려면, 결정자가 수용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제안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 있었던 두 노조의 파업 또는 집회에서 나는 노조가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다.
금융노조의 주장대로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고객이 불편할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지금껏 비수도권에 있는 고객은 도대체 얼마나 불편했을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장과 사무실 등의 사업장을 특정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사업에 매력적인 제안을 그 지역의 지자체와 지역 경제권이 할 수 있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비수도권 지역에 공장을 짓는다고 수도권 지역 공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닐 터다. 외국으로 사업장을 옮기는 것도 경영자는 결정할 수 있고, 어떤 회사는 본사를 이전하고, 어떤 회사는 현지 법인을 만들고, 어떤 회사는 지사나 사무소를 만들어 운영한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출장을 가고, 누군가는 현지에 주재원으로 파견된다. 그 인사발령이 부당하다거나 싫다고 느끼면 대개 사직을 하거나, 항의하다 해고되곤 한다. 해고가 너무 극단적이라면, 적어도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직원들을 달래기만 하지는 않는다.
두 노조의 파업은 이러한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그냥 우리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 요구, 서울과 수도권에나 있게 내버려 두라는 요구, 돈은 더 주고 일은 더 적게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 뿐이다. 연봉을 논외로 하더라도 자기들의 기득권은 내려 놓기 싫지만, 경영자의 경영권도, 국가의 정책도 자기들 마음대로 바꿔 보고 싶다는 모습으로 보여 아쉽다.
금융노조가 고객들에게 더 서비스하기 위해서 영업 시간을 교대 인원을 투입해서라도 더 늘리고, 창구 업무를 줄인 대신 전화 직접 응대라도 더 하겠다든지 하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은 없다. 삼성전자 노조가 RE100 조건 충족, 용수 공급, 정주 여건 강화 등 다양한 조건을 알아보고 현재 결정된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고 제안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도 없다. 그런 소식을 들은 사람이라도 몇 명 있었다면, 그들에게 향하는 시선은 조금 더 부드러웠을 것이다.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정책의 유래는 이미 1970년대부터다. 50여년 동안 주춤한 적은 있지만 이미 많은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대전, 세종, 광주, 대구, 청주, 원주, 부산, 진주, 울산, 김천, 전주, 진천음성, 홍성예산, 서귀포, 나주 등 다양한 곳에 이미 배치돼 있다. 일부는 공장 등 주 사업소 주변의 군 관내 읍면 소재지에 본사를 둔 기관들도 있다. 이들 기관 역시 부작용과 잡음이 있지만, 나름 적응을 하고 일부는 현지에 정착하는 등 효과도 거뒀다. 성공이라고 포장할 것은 없지만, 정착과 적응의 사례가 있는 상황에서 기관 본사의 지방 이전,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차원의 국가균형 발전 정책에 대한 반대는 타당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프라, 그 중에서도 사실 강남과 여의도의 인프라는 현재의 중구와 종로구의 대부분, 남대문구와 서대문구, 성북구와 은평구 일부에 집중돼 있던 기관과 학교들을 분산시킨 결과다. 과천 역시 정부청사를 보내면서 개발돼 현재의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 세종도 처음 정부청사가 들어섰을 때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점차 도시의 형태를 갖춰 나가고 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결국 이러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노동조합이라고 하더라도 실력행사만으로 이러한 효과를 저지하는 것은 이전을 환영하거나 적어도 기대하고 있는 지역민들에게는 또다른 박탈감을 주는 행태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단순히 선발시험에 합격해서 입직하는 자리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그 가운데서도 고연봉 직장을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에서 승리한 사람의 자리로 인식되어서도 안 된다. 공무원이 가져야 할 국민의 봉사자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무원과 국민을 이어 주다가 그것이 버거워지면 해당 지역의 인재든, 지역에 정착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인재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할 정도의 의식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공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이지만 대기업인 삼성전자 노조도 이 점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사측과 정부가 광주·전남 지역에 대형 반도체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 발표는 일부 노조원을 자극했고, 임금 단체협상의 의제로 삼겠다고 맞섰다. 타 지역으로의 전환 배치는 회사의 적절한 인사 조치다. 이를 수용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먼 지역 전환 배치로 개인 생활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망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도 역시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환 배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인재는 자신들 뿐이라는 오만도 배경에 깔려 있다. 그곳에도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고, 잘 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기꺼이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으로 가겠다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 점을 노조원들은 외면한다. 현상을 유지하면서 잡은 기득권을 놓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이라고 해도 삼성전자 노조가 조금 더 나아가는 점은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당당하게 요구하는 점이다. 물론 해외에 고액의 성과급을 책정하는 기업은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그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그 기업으로 이직할 가능성 자체가 막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익처분과 성과보상은 회사, 정확히는 주주의 경영 판단이고, 이에 대한 사항은 사규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교섭 비대상 항목에 대해 별도의 주장을 하는 것은 노조로서는 맞지 않다. 더구나 노조가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논하는 것은 흑자일 때만 가능한 일이다. 적자일 때 영업손실 일정 비율을 감당하겠다는 제안을 할 수 있을까? 그 관점에서 본다면 상한을 폐지하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제안을 하고, 최대한의 보상을 받겠다는 계산 외에 무엇인가.
이렇듯 파업 투쟁이 기득권 지키기의 한 표현 방식인 한, 자신들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외에 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이들의 파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사회적 연대'와 상생을 실천해야 한다. 대기업과 금융권 노조는 자신들의 임금 인상과 자리 지키기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원·하청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이나 취약계층 금융 지원 등을 파업의 핵심 요구안에 포함해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의 일부를 동일한 일을 하고 있거나, 자신들의 일을 대신 처리하는 약자와 나누겠다는 진정성을 보일 때 비로소 대중은 그들의 단체 행동에 고개라도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경영 참여의 합리적 경계를 인정해야 한다. 경영 성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 요구는 합당하다. 그러나 주주와 경영진의 고유 권한인 성과급 정률화나 투자 결정 개입 시도는 멈춰야 한다. 대신 투명한 성과 측정 기준 확립이나 노동자 안전 환경 보장 등 노조 본연의 요구 사항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수도권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가적 과제에 동참해야 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나 기업의 지역 투자는 소멸하는 지역 하나를 살리고, 대한민국 어디든지 살기 좋다는 것을 증명할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노조는 무조건 반대를 하는 대신, '지방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한 인프라 구축 지원'이나 '정착 보조금 현실화' 등 현실적 대안을 사측 및 정부와 협상하는 성숙한 파트너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노조의 진짜 힘은 머리띠를 동여맨 조합원의 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지지와 공감이 없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땅속으로 꺼져 버릴 것이다. 그들 노조에게 아직 선택지가 많이 남아 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그들의 몫이지만, 동여 맨 머리띠가 어색하지 않고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박수를 받는 결정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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