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연금 제도의 맹점을 파고든 일부 외국인의 ‘연금 재테크’ 실태가 드러나며 여론이 그야말로 들끓고 있다.
대한민국 일터에서 단 한 달 동안만 국민연금에 가입해 둔 외국인이, 과거 국내 체류 중 소득이 없었던 공백기인 적용제외 기간의 미납 보험료 119개월 치를 일시에 몰아서 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노령연금 최소 수급 요건인 ‘120개월(10년)’을 단숨에 채운 뒤, 본국으로 돌아가 평생 한국 근로자들이 적립한 기금으로 종신 연금을 수령하는 구조다.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추납 신청 외국인의 약 80%가 한국계 중국인인 이른바 조선족에 집중되어 있으며, 과거 출국하며 받아 갔던 반환일시금을 다시 반납하면서까지 연금 수급권을 ‘복원·기획’하는 사례가 최근 몇 년 새 5배나 급증했다. 평생 성실하게 가정을 일구고 사회보험 재정을 떠받쳐 온 내국인 가입자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지극히 당연하다. 정부가 "국내 단기 거주 외국인의 추납은 모순"이라며 실거주 기간 요건을 결합하는 긴급 제도 개선에 착수한 이유다.
일각에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1달이든 1년이든 적법하게 근로하여 보험료를 냈다면, 내국인과 동일하게 추납권을 인정하는 것이 복지의 보편성과 형평성에 맞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언뜻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일리 있어 보이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자기가 낸 원금에 이자를 붙여 받아 가는 민간 저축예금이 아니다. 저소득층일수록 낸 돈에 비해 더 많은 연금을 받도록 설계된 ‘소득재분배’ 기능이 내재한 사회보험이다. 내국인은 추납 후에도 평생 국내에 거주하며 소비하고 세금을 내며 경제 생태계에 기여하지만, 단기 체류 후 출국하는 외국인은 최소한의 추납 비용만 내고 한국 근로자들의 피땀이 어린 연금 재정의 달콤한 과실만 취해 떠난다. 대한민국 경제에 아무런 기여가 없던 과거 본국 거주 기간까지 사회보장 안전망으로 소급 구매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복지의 보편성이 아닌 ‘정의의 왜곡’일 뿐이다. 차라리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대한민국의 법 테두리 내에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묶이고 함께 경제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귀화’라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꼼수 연금 반대편엔 ‘내가 일해서 낸 내 보험료, 도대체 어디로 갔나?’
더욱 기가 막힌 모순은 이 얌체 같은 구멍의 반대편 그늘에서 발생한다. 허술한 법망을 아는 이들은 단 한 달의 근무 이력으로도 평생 노후를 보장 받는데, 정작 대한민국 일터에서 오랜 세월 정당하게 땀 흘려 일하고도 내 손으로 낸 보험료를 통째로 도둑맞은 채 복지의 사각지대로 밀려난 근로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어가 서툰 이주 노동자나 귀화인의 사례가 흔하다. 더구나 이주노동자들은 심지어 10년을 일했어도, 영주권을 받아 본국에 산 기간보다 한국에 살아온 기간이 길더라도 나라와 조건에 따라 일시금이나 연금 수령이 제한되기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만의 눈물인 것도 아니다. 바로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 그리고 과거 영세 중소기업을 전전했던 내국인 근로자들이 수십 년간 겪어온 유구한 잔혹사다.
시간을 2000년대 후반으로 돌려보자. 당시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나 영세 중소기업에 다니던 수많은 청년과 가장들은 매달 급여명세서를 받아 들었다. 명세서에는 ‘국민연금 기여금 공제’라는 명목으로 소중한 월급의 일부가 선명하게 깎여 있었다. 근로자는 당연히 국가가 나의 노후를 차곡차곡 적립해 주리라 믿었다. 사업주가 내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을 것이라곤 감히 의심하지 못했다.
비극은 수년 뒤, 또는 수십년 뒤 연금공단의 안내서를 보거나 이직을 준비할 때 찾아왔다. 사용자가 월급에서 공제한 기여금을 공단에 단 한 푼도 입금하지 않고 고의로 체납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배신감에 피눈물을 흘리며 노동청을 찾지만 “임금체불이 아닌 사회보험 체납은 관할이 아니니 경찰서에 가서 고소하라”는 차가운 행정 장벽에 막힌다. 법적 지식이 부족하고 당장의 생업이 급한 영세 근로자가 고용주를 상대로 '업무상 횡령'의 형사 고소전을 벌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구상 미청구·강제징수 회피, 연금 보험료 탈취 악덕 기업주 방조 행위
더욱 잔인한 것은 국가의 방조다. 수많은 악덕 기업주들이 근로자의 연금 보험료 기여분을 가로채 자산을 불리고도 여전히 버젓이 기업을 경영하고 있음에도, 국가는 이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부당이득을 강제 징수해 근로자의 가입 기간을 복구해 주지 않는다. 형법상 업무상 횡령죄의 공소시효인 ‘10년’, 그리고 국민연금법이 규정한 강제 징수 소멸시효 ‘5년’이라는 법적 장벽 뒤로 숨어버린 행정 편의주의 때문이다. 시효가 지나면 사업주의 죄과와 체납액은 행정적으로 면죄부를 받고 결손 처분된다. 결국 가입 기간 박탈과 줄어든 미래 연금액이라는 유무형의 형벌은, 오롯이 피해자인 근로자가 짊어진다. 근로자는 가입기간이라도 늘리려고 추납을 선택하지만, 기업이라는 탈을 쓰고 다른 꼼수를 부린 경영주는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단 한 달 일하고 10년 치 연금 수급권을 소급 구매해 가는 외국인의 구멍은 이슈가 됐으니 어떻게든 막힐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월급에서 떼인 돈을 사기당하고도 구제받지 못한 자국민 근로자의 구멍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들 중에서도 국민연금 기금에 기여만 하고, 정작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국민연금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적 성격이라면 동일하게 떼어가는 돈을 외국인에게는 다른 명목으로 떼고, 그 기여만큼의 혜택을, 고용주들의 꼼수를 막으면서 부여해야 하는 것이 옳다.
국민연금이 진정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면 들어오는 얌체족의 문을 걸어 잠그는 일은 당연하게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국가를 믿고 일터에서 땀 흘린 이들의 빼앗긴 권리를 찾아주는 일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고의 체납 사업주 추적 체계를 강화하고, 시효와 상관없이 사용자의 횡령으로 확인된 체납 기간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근로자의 가입 기간을 100% 원상복구 시키고 나중에는 구상권을 청구하든 형사 처벌을 하든, 빠른 시일 내에 민사 책임을 지게 하든, 어떤 형태로든 징벌적 구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억울하게 빼앗긴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 망정, 악덕 기업주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그 악덕을 더욱 과감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연금 제도는 그 어떤 구멍을 완벽히 막아내더라도 결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조강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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